기억을 조작할 수만 있다면 자꾸 떠오르는 이미지를 블러처리라도 하고 싶다. 지우기엔 너무 소중하고, 그렇다고 매번 마주하기엔 너무 눈부시다. 삶의 모든 순간은 좋든 싫든 예술 작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공감이 되는 작품도 있지만, 색이 너무 독특해서 심오한 작품도 있고 구성이 복잡해서 시끄러운 작품도 더러 있다. 그냥 뭐랄까. 새로운 순간들을 마주할때마다 지나간 작품들에 갇혀있고 싶지 않아서 당신에 대한 모든 기억의 불투명도를 내멋대로 조절하고 싶을 뿐이다.

[ Diary - Fri, 6th Aug 2021 ]

 

단 하루도 빠짐없이 뇌리속에 떠오르는 기억을 지워낼 수 없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들로 채워가고자 했던 나란 인간이- 올해 5월 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모두가 한정된 시간 속에 살아가는데.. 작별인사 없이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이다. 덕분에 죽음이 평온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수술 이후 온 몸 구석구석 핏줄 하나까지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지난 과거가 빨리감기처럼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파란만장한 녀석들의 투명도를 제로에 가까울 만큼 줄이고 싶었다. 그 순간, 오로라를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천팔백이십오일이 무색해질만큼 다른 세상을 보여주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여행 당일날, 새벽 일찍 집을 나섰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 후 체크인을 하려던 와중, 출발장소가 YVR(Vancouver International 공항)이 아닌 YXX(Abbotsford International 공항)임을 알게 되었다. 아보츠포드 공항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대 1시간. 우버를 잡았으나(요금은 83불), 8분정도 기다려야 했다. 때마침 짠 하고 나타난 옐로우캡 아저씨가 어디가냐고 여쭤보신 덕분에 곧바로 그 택시를 탔고 우버아저씨껜 죄송하다는 메세지를 전달한 후 취소 수수료 5불을 지불했다. 그리고, 옐로우 캡 안에서 심호흡을 크게 내쉰 이후 Westjet 고객센터에 연락을 취했다. 현재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며 비행기 출발 10분 전에 도착할 시, 탑승 가능성의 여부에 대해 간곡히 여쭈어 보았으나 안내원의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답변뿐이었다. 대신, 다른 비행편을 알아봐 줄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옐로나이프로 가는 당일 비행편은 모두 마감이 된 상태였고 가장 빠른 날짜는 다음주 월요일이었다. 사전에 숙소와 각종 투어 및 일정들을 모두 계획하고 페이까지 지불했던 나로선 오늘이 아니면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다른 항공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미터기 요금을 보고 놀란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면- 150불 훨씬 넘게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사정을 이해하신 옐로우 캡 아저씨는 그제야 미터기를 스톱하셨지만 이미 말도안되는 요금($118)이 찍힌 상태였다. 그렇다고, 달리는 고속도로에 그냥 내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아보츠포드 공항까지 데려다 주셨지만, 아저씨께서 길을 두번이나 잃으셔서 돌고 돌아갔기에... 이미 비행기를 놓친 셈이나 다름없었다. 

홀로 남겨진 아보츠포드 공항에서 감사하게도 Aircanada 당일 오전항공편을 발견했다. 편도요금은 한국에서 사전결제한 Westjet 왕복비행편($333.80)보다 두배가 훨씬 넘는 가격($744.23)이었지만, 그동안 열심히 세이빙하고 불상사를 대비한 돈을 마련했던 덕분에 고민도 없이 곧바로 비행기표를 결제했다. 다만 출발지가 아보츠포드 공항이 아닌 밴쿠버 공항이었기에 다시... YVR로 가야했던 자신이 너무 바보같았으나- 이번엔 옐로우캡이 아닌 우버($85.18)를 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security-check 당시, mosquito spray를 지퍼백에 함께 담지 못한 이유로 baggage관련 문제도 있었다만, 빼앗기지 않아서 고마웠다.

 

Vancouver YVR -> Edmonton YEG

오전 10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Edmonton YEG -> Yellowknife YZF

알버타의 주도 에드먼턴에 무사히 도착했다. 옐로나이프 비행편을 타기까지 한시간 남짓해서 아침겸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새벽부터 시끄러웠던 덕분에 방전된 나머지 수면을 택했다지<

 

 

 

꺄아아아아 드디어 옐로나이프 입성!!❤︎ 

여행동안 머물렀던 숙소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던 하늘.. 

 

❤︎

 

ps. 옐로나이프에 있는 동안 늘 저녁시간대에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던 커플이 계셨다. 첫째날은 구름이 껴서 오로라를 관측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저 커플 덕분이었을까..? 이미 내 눈엔 오로라가 하늘에 펼쳐진 것만 같았다.

 

(꼬르륵 짖어대는 배를 달래고자 저녁을 먹으러 걸어가는 길)

 

 

[ Operating Time ]

Mon-Sat : 12-9pm
Sun : 4-9pm
* 내부에서 식사하려면 예약필수. (당일예약도 가능)

 

그 유명하다는 Bullock's Bistro..!! 정겨운 외관이었지만, 내부에 들어가니 자리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웨이트리스분께 바깥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여쭤보니 다행히 가능하다고 하셨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Buffalo Stew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왕 여기까지 온 것, 가장 비싼 음식을 먹고싶었다.  옆 테이블을 보니, 일곱 명의 손님이 전부 다 드시지 못할 정도로 음식 양이 후덜덜했지만- leftover 포장도 가능하다고 하셨기 때문에 딱히 아까울 것 같진 않았다. 

 

음식을 주문하던 도중 한 테이블의 손님 두분께서 나에게 '절대 혼자 다 먹지 못해요'라고 말씀하셨다. 덧붙여 1년동안 옐로나이프에 지내면서 혼자온 어린친구는 처음 보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대화. 비행기를 놓치고 하루동안 천달러가량 깨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분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해진 채, 그 정도로 이곳에 오고싶으셨는지 여쭤보셨다. 진짜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면 괜히 눈물이 글썽거릴것 같아, 올해 꿈 중의 하나였다고 대답했을 뿐인데.. 본인들의 경험담을 공유해주시며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말씀해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Arctic Char - $43

실물 크기가 후덜덜했던 북극 곤들매기를 영접한 순간, 감사함이 배가 되었다죠.

 

 

아니... 눈으로만 영접해도 배가 부를 수가 있나요...?

 

 

그나저나 물을 요청했는데 와인병째로 내어줄 줄은 몰랐다. (네, 4불추가입니다히히)

 

ps. 한국 식당에선 물에 대한 요금이 없지만- 미주나 유럽 지역에선 물을 사야될때가 대부분이다. 그럴땐 미리 물을 준비해서 간다던지- 혹은 tap water 마실수 있는지 여부를 여쭙고 주문해야겠다.

 

별도로 요청한 게 아니었지만,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면서 소스 두개까지 주고가신 서버분..!❤︎

 

 

붉어지는 해질녘을 보고 있자니 심박수는 콩닥콩닥.

 

 

그나저나... 아직 24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몇일 지내본 느낌은 왜였을까?

 

 

설레임과 편안함이 공존할 수도 있는건가.

 

 

ps. 홀로 있던 내게 다가와주셔서 말을 건네주신 Bullock's bistro 직원분들의 친절함도 기분좋았는데.. 아니왠걸. 이미 자리를 떠나신 옆 테이블 손님께서 나의 식사까지 계산하고 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디저트도 주셨던 걸까...?ㅠㅠ)

 

 

깨끗히 비워진 내 접시를 보고 웨이트리스분이 경악하셨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너무 웃겼다죠)

 

 

떠나기전 벽에 메세지를 적고 가라고 펜을 주신 덕분에- 어떤분 명함 위에 작게나마 끄적여보았다고 한다. (솔직히, 공간이 없었다만... 내사진도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 아홉시가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밖은 환했고.. 발걸음도 가벼운 나머지- 만날 수 없는 극과 극을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었던 옐로나이프 첫날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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