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사랑하니까 / 두서없는 일기 (+ 또다른 선물)
하루에 2-3시간만 자도 멀쩡했던 열아홉. 동기들을 비롯해 당시 같이 살았던 룸메마저 이런 나를 신기해 했지만 팩트는 이거다. 스스로의 체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면서도 바로 눈앞에 있는 과제와 세속적인 것들에 제대로 꽂혀 오만에 빠지지 않았을까.
의지대로 해낼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 뜨거운 열정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이뤄낸다는 자기기만에 빠져 수면욕구조차 맞서 싸우려고 했던 스스로가 우습다. 해가 지나고 지날수록 어딘가 망가지는 느낌이 들어야 2-3시간 수면량이 멀쩡한게 결코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최소한, 대여섯시간은 자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무리를 잘한다. 결함이 있는 존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에게까지 이기적이고 오만할 줄이야 양심이 찌릿찌릿 아파오기 시작한다. 더 재밌는 사실은, 이 모든 결점들을 안아줄 수 있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인 사랑인데- 본인에게 되묻고 싶다.
그래서 행복하니?
모든 욕구를 통제하려하다보니 사랑과 욕망에 대한 경계가 흐릿해진건 아닐까.
매 하루가 꿈을 향한 도전이고, 약점에서 비롯된 수많은 죄들과의 싸움이며 그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데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닐까. 라고 말하는것조차 사랑을 꿈에 이용하려는 자기기만이 아닐까. 가끔은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내 두뇌를 떼어다 외딴 섬에 두고 오고 싶다.
꿈을 사랑하는 것처럼 아니 꿈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은 오만가지 욕구가 드는 내 마음도 탈부착이 가능하다면 이미 난 빈 깡통이 되어버렸겠지. 지금당장 행복하진 않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더 감사하고 내일이 기대되는 오늘이기에 꼭 누군가를 사랑해야지만 얻는 행복은 아닐지라도 목표를 향한 작은 실천에서조차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 신기한건, 두서없이 감정을 써내려가다 지금. 딱. 이 시점이 되자마자 엔돌핀이 도는 건 뭘까. 진짜 변태인걸까? 본인 스스로의 결점을 토해내는게 행복을 느끼는 방식인걸까.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려나?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나는 행복하니 정신좀 차리고 더 늦기 전에 손목치료 받으러 병원이나 가자.
- Fri, 13th, Aug 2021 (일기)
불과 일년 전에 썼던 일기인데, 어제인듯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종의 단점을 꼭 집어 말해야 한다면 터널증후군 및 수면부족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역시 밴쿠버 기반의 회사에서 일하게된다면 다소 달라질 수 있을지언정.. 나라는 영혼 자체의 행동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난 고생을 사서 하는 타입이다. 커다란 것부터 작은 녀석들까지- 제 1부터 최소 3~5방안까지 세우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할지언정. 디테일 하나까지 내새끼마냥 파고든다. 1픽셀 엇나간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인지라 같이 일하는 개발자가 피곤할 수 있지만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좋아한다.
무쪼록, 마감기한 이후 해방이 된 그 기쁨은 뭐랄까. 자아실현의 욕구가 나머지 욕구들을 정복한 짜릿함이다. 동시에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바로 피부에서 드러나는 걸 보니 수면에게 절해도 모자랄 판이다. 한달동안 바쁘게 일하는 와중, 한국에선 입에 대지도 않았던 술들을 마시고 클럽을 벌써 세군데나 다녀온 내가 신기했으나- 이런 경험도 해보고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어 영광이었다. 한번은 클럽에서 허한 감정이 몰려온 탓에 구석에서 나홀로 일기를 몇십분동안 끄적이기도 했다. 몇일 전 어떤 캐네디언 친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왜 키스안했어? 꽤 많은 유학생들과 외국인들은 다 즐기던데. 즐기는게 나쁜건 아니잖아.
그의 이런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편견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참. 겉과 속이 괜찮다 하더라도 키스하고 싶지 않은데, 그걸 무조건 즐겨야 하는건지 의문이 들긴 했다. 아니 어쩌면 올해 초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 덕분이었을까. 엄마는 내가 그 아픔을 떨쳐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 누구도 경험하기 힘든 일들을 맞닥뜨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통증과 고통은 진행되고 있었고 이미 그것에 훈련된지 오래였다. 그와중에 아빠는 내가 스스로에게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까놓고 이렇게나마 기록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쯤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뭐라고 딱 명명하고 싶지 않은 불가사의한 욕구를 풀기위해 시작했던 운동이 어느덧 이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옷으로 보여지는 내 모습보다도 살갗이 다 드러나는 그대로의 형체가 좋아지기 시작한 건 멈출줄 모르고 발버둥쳤던 멍청한 영혼 덕분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본인만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 뭐그렇게 버둥대는지 그냥 흘러가는대로 마음을 텅 비우고 살아가면 되지 않나?
참 신기했다. 어떻게하면 마법처럼 마음을 청소하고 지울 수 있는건지 딱히 바라는 것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의 마음을 탐험하고 싶었다. 과연 그 마음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건지 티끌만큼 먼지한톨없는 세상인지 궁금했다. 마음의 레이아웃을 변경하고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줄여나가고 투명도를 조절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포맷을 시켜버릴 수 있는건지 적어도 나에게 그들은 천재였다.
내 영혼을 사랑하지만 솔직히 멍청한 것도 팩트라는게 조금은 서글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마음을 새로운 것으로 채워나갔고 그러다 저장 공간이 부족하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목록들을 실천했다. 마음을 비울 수가 없다면 차라리 그 마음을 간직하고 더 단단해진 영혼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여지는 내 몸을 보는게 좋다. 멍청해보일 수 있어도 발버둥쳤던 시간들을 관찰하며 세세함 하나까지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라고 딱 명명하고 싶지 않은 불가사의한 욕구를 풀기위해 부지런히도 걸어왔다. 여전히 살갗은 부드럽지만 예전엔 없었던 선들이 희미해지고 희미했던 선들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그렇게 멍청하기 때문에 단단해질 수 있다는 메세지가 마음에 명중한 순간의 짜릿함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쾌락이니까.
하지만 이젠 내 안의 몸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38. 학기 시작 후에 정신없이 바빠질지언정, 적어도 수면 5-6시간은 지키기.
지킬 확률이 50%도 넘지 못할 걸 알면서도 꿈 리스트에 적은건- 나의 결점을 애정하기 때문에 도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데려온 프로바이오틱스와 비타민C 외에도, 올해 38번 꿈에 도움이 될까 싶어 최근 아이허브에서 또다른 친구들을 모셔왔다. 오메가 3, 아연, 그리고 비타민 D다.
음식을 기록해두는 것도 건강한 습관을 길들이는 것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요즘들어 자꾸 누군가에게 요리해주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누가 나한테 이거해줘 저거해줘하면서 귀찮게 따라다녔으면 좋겠다.
아마 이런 마음이 드는건, 바깥세상에 나가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느꼈던 감정의 소중함 덕분이지 않을까?
+ 어제자 뜻밖의 선물 (from Housemate & Robert)
되려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인 관심과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나란 인간이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영혼이 되고 싶다고 하니... 일년 전 썼던 일기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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